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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5월 31일 우리나라 첫 인터넷 구축
최준원  (Homepage) 2016-06-01 14:09:35, 조회 : 1,175, 추천 : 175

* "이제 연결된 것 같습니다”

1982년 5월.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 한 명이 연구팀을 이끌던 전길남 박사를 불렀다. 컴퓨터 개발실에 놓인 단말기 앞에 박사가 자리를 잡자 그 주위로 연구원들이 모여들었다. 수십 개의 눈이 향한 곳은 오직 단말기 모니터. 구미에서 서울대학교에 있는 컴퓨터에 접속하기 위해 “UVTP snucom”을 입력했다. 잠시 후 모니터에 서울대학교의 컴퓨터 화면이 나타나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개발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침내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와 서울대학교 컴퓨터간 인터넷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연구를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가던 봄이었다.
우리나라에 인터넷(IPv4네트워크)이 처음으로 구축된 순간이었고, 미국에 이은 세계에서 두 번째 성공이었다.


* 컬러TV도 겨우 만드는데 컴퓨터를?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 유학을 거쳐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하던 전길남 박사가 대한민국 전자기술연구소(KIET)의 초청을 받은 것은 1979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추진 중이던 프로젝트는 ‘반도체 및 컴퓨터 국산화’. 즉, 앞으로 컴퓨터를 국내의 기술력으로 생산하고 수출까지 하고 싶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였다. 하지만 이제 겨우 컬러 텔레비전을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다.

컴퓨터 개발 하나만으로도 막막한 상황에서 전길남 박사는 욕심을 더 냈다. 자신의 원래 전공인 컴퓨터 네트워크도 추가로 연구하기로 한 것. 컴퓨터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미국이나 유럽과 정보를 주고 받아야 한국이 그들과 제대로 협력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당시의 인터넷은 미국이 1969년 개발한 아르파넷(ARPA NET)이 유일했다.

컴퓨터를 만들면 그게 세계에서 열다섯 번째도 넘는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인터넷을 구축한다면 말 그대로 선도그룹에 들어가는 거에요.
욕심이 났죠.


*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변방의 나라에서

한국에서 인터넷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유럽은 물론 일본, 호주 등에서도 인터넷을 구축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는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를 경험한 사람도 거의 없던 상황에서 연구팀은 소수의 연구원과 대학원생으로 꾸려졌다. 서울대 연구실의 시설이 열악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가 보유한 컴퓨터는 사양이 낮아서 다른 나라였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수준이었다. 그러나 절실함만은 강했기에 서울과 구미의 연구팀은 논문에서나 보던 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심지어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을 단 1분이라도 뺏기지 않기 위해 그 흔한 연구 일지나 사진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결국 3년간의 고생은 세계에서 두 번째 인터넷 구축이라는 쾌거로 이어졌다. 1982년 서울과 구미의 컴퓨터가 낙후된 전화선을 통해 연결되었을 때, 인터넷 속도는 고작 1,200bps였다. 최근의 속도가 수Gbps에 이르는 것을 생각해 보면 100만 배의 차이다.


* 한국에는 팔지 않겠다!

인터넷을 개발하려면 ‘라우터(Router)’라는 장비가 필요했는데 미국에서는 이를 첨단 기술로 취급했기 때문에 영국과 노르웨이에 각 1대씩 설치 해줬을 뿐 다른 국가에는 판매조차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라우터를 자체 개발하자는 쪽으로 연구팀의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이는 많은 기술과 시간을 요하는 어려운 작업이었고 심지어 서울대학교에 있던 컴퓨터는 사양이 매우 낮아서 자체 개발하더라도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념이 담긴 노력 끝에 연구팀은 결국 라우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고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 연구실의 네트워크에서 모두의 인터넷으로

애초에 인터넷(IPv4네트워크)은 연구 수준의 증진이라는 학술적 용도를 위해 개발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국내에서의 네트워크, 즉 인터넷에 대한 수요는 강력했다. 일례로 전길남 박사는 1980년대 후반경에 갑자기 늘어난 트래픽을 추적하다가 카이스트에서 학부생들이 인터넷으로 게임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학생들은 미국, 영국 등지에서 새로 나온 게임을 받아보거나 동시에 그쪽과 게임을 하는 용도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사는 물론 초기의 개발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기술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보통 사람들의 인터넷 수요는 개발자들에게 자극이 되었다.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며 오늘날의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 이르게 된다.


* 인터넷이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 있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환경이 구축된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없는 하루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오늘의 뉴스를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웹툰을 보거나 전날 놓친 방송영상을 찾아본다. 점심을 먹다가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고, 카페에 가서는 노트북으로 동영상 강의를 보거나 온갖 자료를 검색한다. 어딜 가든 가장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인터넷 연결 상태일 정도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기술이 바로 인터넷이다.

이처럼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인터넷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연이나 행운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30여 년 전 5월의 어느 날, 열악한 시설과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네트워크를 구현해낸 전길남 박사와 연구진들이 있었다. 그들의 절실함과 땀과 기나긴 시간이 있었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그날로부터 오늘의 IT는 시작되었다.


[출처] 1982년 5월 31일 우리나라 첫 인터넷 구축|작성자 네이버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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